쿰란 공동체는 무엇을 소망하며 광야에 거했던 것일까? 일반적으로 쿰란 공동체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종말론적 신앙은 마지막 때를 염두에 두고 기다리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쿰란 공동체는 바로 이 마지막 때에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결국 빛의 아들들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신앙의 중심에는 빛의 아들들의 공동체를 이끌게 될 메시아가 있었다.
1. 구약 성서에 나타난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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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적인 의미, 그리고 왕정 시대의 메시아
히브리어로 메시아(משיח *그리스어 χρῑστός)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들은 전통적으로 “제사장"과 “왕”이었다.
이 소제는 아론의 자손 중 기름 부음을 받고(משיח) 그를 이어 제사장 된 자가 드릴 것이요 영원한 규례로 여호와께 온전히 불사를 것이니 (레 6:22)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משיח = 왕)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삼상 2:10)
즉, 본래 이스라엘의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최고 지도자들을 일컬어 “메시아"라 불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국 시대, 메시야는 당시의 실제적인 지도자들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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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멸망과 포로기 이후, 그리고 유대교 전통에서의 메시아
그런데 이러한 메시아 개념은 포로기를 기점으로 변화하게 된다. 왜냐하면 유다의 멸망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왕정의 몰락을 초래했기 때문에 가시적인 왕과 제사장은 더이상 존속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메시아라는 호칭은 실제적인 호칭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종말론적이고 신학적인 호칭으로 인식된 것 같다.
특별히 주목해 볼 만한 것은 고레스 왕이 메시아 칭호(לִמְשִׁיחֹו לְכֹורֶשׁ 사451:1)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과 유다를 초월한 보편적 유일신 신앙의 확립을 통해 이방왕들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강조하려고 하는 수사(rhetoric)이거나, 혹은 보다 포괄적인 메시아 개념에 대한 흔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물론 유대교 전통에서는 고레스와 메시아 호칭을 따로 분절하여 읽으려 하는 경향성이 있다. 참고).
포로기 이후, 그리고 유대교 전통에서의 메시아 사상은 다음의 성경 구절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 49:10)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민 24:17)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사 11:1-5)
위와 같은 성경 구절들은 메시아가 유다와 이스라엘을 아우르는 통치자(규)이며, 그 통치자는 이새의 줄기, 즉 다윗의 가문에서 나타나게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비록 유다의 다윗 왕조는 바벨론의 침공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계속해서 다윗왕조의 회복을 구해왔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열왕기하가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의 감옥에서 풀려나왔던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다윗 왕조의 재건에 대한 중요한 희망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편, 유대의 왕과 제사장직은 훗날 하스모니안 왕조의 시작과 함께 부활하게 되는데, 하스모니안 왕조의 왕들은 대제사장직과 왕권을 모두 차지하였지만, 다윗의 후손도 아니고, 사독의 자손들도 아니었던 하스모니안 왕조의 왕들이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며, 이러한 정책에 반하여 성전과 예루살렘을 등지고 떠난 쿰란 공동체와 같은 이들이 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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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메시아인가, 신적인 메시아인가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장차 올 메시아는 인간 메시아인가, 아니면 신적인 메시아인가?
유대교 전통에서는 다윗의 시들을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메시아의 기본 모델은 다윗 왕조의 이상향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시편들 가운데 소위 왕정 시편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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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시편 - 2, 18, 20, 21, 45, 72, 89, 101, 110, 132, 144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6-7)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시편 89:20, 26-27)
예를 들어 시편 2편은 위와 같이 왕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신적인 메시아임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왕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고대근동의 왕정 수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다윗 왕조를 높이고, 이 땅 가운데 다시 이 왕조가 회복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수사라 할 수 있다.
즉, 구약성서는 과거 다윗 왕조의 왕들을 중심으로 했던 역사에서, 미래에 도래할 다윗 계보의 메시아를 대망하는 종교적/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지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왕정 시편의 용어로 작성된 예언서들에서도 볼 수 있다(이사야 9:6-7; 11:1-5; 미가 5:2-5a; 예레미야 23:5-6; 에스겔 34:23-24; 37:24-28; 스가랴 9:9-10).
참고:
2. 다마스쿠스 문서 (Cairo Damascus Document), 그리고 쿰란 공동체의 메시아
이 문서의 파편들은 이미 1897년 카이로 게니자(Ben Ezra 회당)에서 Solomon Schechterd에 의해 발견되었다(*게니자 - 회당의 문서 창고). 이 문서가 발견될 당시 이 문서는 사독 단편들(Zadokite Fragments)이라 불렸으며, 발견 당시 두 종류의 사본들(CDa 10세기, CDb 11~12세기)이 발견되었다.
그러다가 쿰란 동굴에서 이 문서의 일부가 발견되었고(4Q265-73, 5Q12, 6Q15), 발견된 문서에서 다마스커스라는 이름이 빈번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다마스커스 문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발견으로 인해 이집트에서 발견된 다마스커스 문서가 본래 쿰란 공동체에 그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본 문서에서 다마스커스라는 명칭은 시리아의 한 도시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바벨론 혹은 쿰란을 유비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으로 생각된다. 아모스서에는 다마스커스와 관련한 다음의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아모스 5:27)
즉, 다마스커스는 예루살렘 밖으로 강제이주 당한 지역을 표상한다. 본 문서에서 에스겔서가 상당 부분 인용되기도 하는데, 에스겔서는 예루살렘 밖, 포로의 땅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강조하고 있음. 즉, 예루살렘 밖 유다 광야에서 희망을 찾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쿰란 공동체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메섹 문서의 전반적인 내용은 공동체 일원들에게 주어지는 규율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런 차원에서 이 문서는 공동체 규율(1QS)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결혼에 대한 허용 등과 같이 공동체 규율 보다는 좀 더 덜 폐쇄적인 생활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다메섹 문서는 보다 광범위한 에세네파 일원들을 위한 규율서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본 문서는 다분히 종말론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데 현재 자신들이 존재하는 그 때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긴 지 삼백 구십년이 지난후에(*에스겔 4:5의 390일과 연관; 아마도 쿰란 공동체의 창설과 관계?), 그는 그들을 찾으셨고, 이스라엘과 아론으로부터 한 가지가 나게 하신 후(*이사야 11:1과의 유비. 메시아를 가리킴), 그로 하여금 자기 땅을 소유하게 하시고 또 자기 땅에서 난 좋은 것들로 배부르게 하셨다(CD 1.4-8)
위와 같은 다마스커스 문서의 언급은 하나님이 그들, 아마도 빛의 아들들이라 일컬어지는 쿰란 공동체의 시작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것 같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가 멸망한 해는 기원전 587년이고, 이후 390년이 지난 시점은 197년이 된다. 비록 정확하지는 않지만 쿰란 공동체가 존재했던 시기와 유비되는 시기를 언급함으로 자신들이 중요한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스라엘과 아론으로부터 한 가지가 나게 하신다”는 표현이다. 쿰란 문서의 맥락에서 이스라엘과 아론은 각기 정치적인 메시아(왕)와 종교적인 메시아(대제사장)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이미 앞서 언급했던 구약 전통을 계승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경들과도 같았으며, 길을 찾아 헤매는 자들과도 같았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말이다 ... 그리하여 그는 그들을 위하여 의의 교사를 세우시고, 그로 하여금 자기 마음에 있는 길을 그들에게 가르치게 하셨다. (CD 1.9-11)
여기서 주목해 볼만한 것은 의의 교사의 등장이다. 이 의의 교사가 나타나기까지 근 20년의 시간이 걸렸음을 말하고 있다. 즉, 기초적인 쿰란 공동체의 형성 이후 20년의 시간이 지나 주도적인 지도자가 등장했고 그가 바로 “의의 교사”라는 점이다. 그는 성서 해석의 권위를 갖고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성서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했던 쿰란 공동체에 있어서 그는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메시아와 같은 존재일까?
교사의 소집하는 날로부터 아론과 이스라엘로부터 메시아(משיח מאהרן ומישראל)가 일어날 때까지 유일한 교사의 ... 그리고 완전히 거룩한 자들의 회중에 입문하되 정직한 자들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 게으른 자들에 대한 심판은 이렇다 (CD 19.35-20.2)
위 구절은 의의 교사가 죽을 때(소집 אסף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문맥에서는 죽음을 의미)와 이후 메시아가 일어날 때까지 심판을 받게될 불의한 이들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의 교사와 아론과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구별되는 언급을 볼 수 있다. 즉, 이 구절에 따르면 의의 교사는 메시아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공동체의 지도자의 책임을 갖게 되는 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아론의 메시아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가? 복수를 지칭하는 것인가? 공동체 규율에는 이 메시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청므부터 배워온 본래적인 율법에 기초하여 판단해야 한다. 예언자가 올 때까지, 그리고 아론의 메시아와 이스라엘의 메시아(משיחי אהרן וישראל)가 올 때까지 말이다. (1QS 9.10-11)
문법적으로 단수로 표현하고 다마스커스 문서와 달리 공동체 규율 문서는 메시아를 복수형으로 적고 있다. 단수로 표현되어 있다 할지라도 히브리어의 특성상 집합 명사의 개념으로 단수로 쓰이는 방식이 일반적인 용법이기도 하다. 종교와 정치 영역을 구분하는 언급은 다메섹 문서 곳곳에서 나타난다.
율법의 책들은 왕의 장막을 가리킨다 이는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다: 아모스 9:11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겠다. 왕은 회중을 의미하며, 우상들의 기윤은 예언자들의 책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들의 말을 멸시하였다. 그리고 별은 율법의 해석자를 가리킨다. 그가 다마스쿠스로 올 것인바,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민수기 24:17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통치 지팡이 (sceptre)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날 것이다." 통치 지팡이는 회중 전체의 지도자를 가리킨다 (CD 7.15-20)
(*별 - 종교적 메시아, 막대기 - 정치적 메시아)
(*여기서 별은 바르 코크바를 메시아로 보았던 사람들이 그에게 붙인 칭호이기도 하다)
그는 그들이 자기를 버리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일 때, 자기 얼굴을 이스라엘과 지신의 성소로부터 감추셨으며, (CD 1.3)
(이스라엘 - 정치 체제, 자신의 성소 - 종교 체제)
또한 그는 그들을 위하여 이스라엘 안에 안전한 집(בית נאמן)을 세우셨다. 옛날 이후로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집을 세우셨던 것이다. (CD 3.19)
네 집(ביתך)과 네 나라(ממלכתך)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ונאמן)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7:16)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בית נאמן)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삼상2:35)
(안전한 집(בית נאמן) = 네 집(성전) / 네 나라(왕조?))
앞서 언급했듯이 공동체 규율문서와 다마스커스 문서에서 언급되는 두 메시아에 대한 인식은 성서 해석에 근거한 것이다. 모세/아론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의 양분화된 지도체제가 성서에 이미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포로기 이후 정치 지도자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와의 관계성 속에서도 드러난다. 즉, 이후 유대교는 한동안 이러한 쌍두 지도 체제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쌍두 정치 체제의 흔적은 하스모니안 왕조 시대 때까지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요한 히르카누스(134(110)-104)는 왕이라는 호칭 대신에 "제사장 요한과 유대의 회중(의회)"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아리스토블루스 1세(104-103)에 이르러 왕이라는 호칭까지도 스스로에게 부여했는데 이에 대한 반발로 만들어진 문헌이 솔로몬의 시이다. 그만큼 한 사람이 대제사장과 왕의 지도력을 독차지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쿰란에서 발견된 종말론적인 규율서인 회중 규율서(1QSa)는 다음과 같은 집회와 식사 모임의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전체 회중의 우두머리인 제사장이 먼저 들어올 것이며 ... 그리고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자리를 잡은 후에 ... (1QSa 2.11-13)
위와 같은 자리 배석은 일종의 서열을 나타내는 것이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메시아, 즉 정치적인 메시아보다 높은 서열을 갖고 있는 것이 종교적인 메시아 제사장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종교적인 메시아는 “율법의 해석자”를 의미하며, 바로 율법의 해석자는 쿰란 공동체와 긴밀한 관계성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하스모니안 왕들이 스스로를 대제사장이라 일컫는 것에 반하여,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종교적인 메시아가 도래할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공동체 규율과 다마스커스 문서는 줄곧 사독 계열의 제사장의 위치를 매우 강조한다. 즉, 예루살렘에서 정치적인 메시아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공동체를 중심으로 세워질 종교적 메시아가 우위에 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3. 기독교 메시아 신앙과의 접점의 가능성
이와 같이 쿰란 공동체의 메시아 신앙은 종말론적 역사 속에서 정치적인 메시아의 모습 보다는 보다 종교적인 메시아에 더 무게 중심을 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쿰란 공동체는 군사 지도자를 메시아로 여겼던 열심 당원들의 생각과 이해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의 메시아 신앙 역시 종교적인 메시아 상이라는 데에서 쿰란 공동체의 메시아 상과 교차점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 가운데 선포하는 메시아로 나타난다. 율법의 해석자라는 지위를 가진 아론의 제사장과 유사성이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메시아 신앙의 독특성은 통합성과 초월성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로서의 지위는 앞서 언급했듯이 종교적인 영역에 집중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윗의 자손, 즉 정치적인 메시아와의 연관성 또한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치적인 메시아와 종교적인 메시아를 구별하는 쿰란 공동체와 유대교의 메시아 신앙과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주는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독의 계보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히 5:10)라고 강조한다. 이는 이방인 제사장을 예수 그리스도에 유비함으로 시대와 물리적 영역을 초월한 영원한 제사장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을 이루신 메시아라는 고유한 기독교 신앙이 자리잡고 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이사야 53장에 근거한 고난 받는 메시아 신앙은 전적으로 부정된다. 이는 신적인 메시아 신앙을 갖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고, 이 고난을 속죄(제사)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유대교 신앙에서 이사야 52-53장에 나타난 고난받는 종은 이스라엘 민족 스스로를 일컫는 것이라 여겨진다(람반). 유대교는 자신들의 속죄 문제를 이삭 제물 사건을 적고 있는 창세기 22장 아케다(결박) 이야기에 그 근거를 둔다.
그런데 한가지 과제는 쿰란 문서에서 나타나는 의의 교사, 혹은 메시아를 초월적인 존재라 볼 수도 있는 언급들이 일부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그들은 그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부를 것이다 ... 그의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 될 것이요... (4Q246 2.4-5)
나의 영광은 비교될 수 없으며, 나 외에는 어느 누구도 높임 받을 수 없고 나에게 올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하늘의 [...]에 거주하기 때문이요, 어느 누구도 ... 나는 신들 중에 속해 있고 나의 처소는 거룩한 회중에 속해 있다. (4Q491(제2전쟁두루마리) 제11단편 1.6)
나의 영광에 비교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내 자리는 신들과 더불어 있고 내 영광은 왕의 아들들과 더불어 있기 때문이다 (4Q427(4QHa) 제7단편 1.11-12)
또한 다윗의 자손의 죽음을 언급하는 다음 구절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바와 같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울창한 삼림을 쇠로 벨 것이요, 레바논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함께 쓰러질 것이다.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한 가지가 날 것이요 ... 그들은 회중의 지도자, 즉 다윗의 가지를 죽일 것이요 ... (4Q285 1-4)
이러한 단편적인 기록들이 당대 메시아 신앙을 갖고 있던 쿰란 공동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새로운 통찰력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쿰란 공동체는 유대교의 메시아 신앙의 연장선 상 가운데 있었으며, 당대 많은 유대인들이 원했던 강력한 정치적인 메시아에 대한 기대 보다는 종교적 메시아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그들의 특별한 신앙관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