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매에 나온 성경
최근 한 오래된 성경책이 경매에 출품이 되었다. 이 성경책은 최고 600억원 이상의 가격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성경책은 코덱스 싸순 1053이라는 이름이 붙은 성경책으로 19세기 중동지역 출신 유대 공동체의 리더였던 데이빗 솔로몬 싸쑨(1880-1942)이 소유했던 사본이었다. 이 사본은 대략 9세기 말에서 10세기의 사본으로 생각되며, 현존하는 사본들 가운데, 알레포 사본(10세기), 레닌그라드 사본(11세기)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사본이다. 알렙포 사본이 40% (토라 부분)이나 소실된 데 비해 이 사본은 12장만이 소실되었다(*레닌그라드 사본은 완본으로 남아 있음). 그렇기 때문이 이 사본의 가치는 매우 크게 여겨진다.
그런데 사실 성경의 형성 역사를 생각해 볼 때, 10-11세기는 꽤나 늦은 시간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주전 3-2세기 정도에 완성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원본은 남아 있는 것일까?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한글 성경의 뿌리는 무엇일까?
우리는 본 강의를 통해 성경의 형성 역사를 살펴보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 왔는지 살펴보게 될 것이다.
2. 한글 구약 성경
구약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본은 무엇일까? 아니, 먼저 우리가 현재 번역된 구약성서의 대본으로 삼고 있는 히브리어 성서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많은 교회들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판의 성경번역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이 내용과 실제 초기 한글 번역본들은 대한성서공회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나라 말로 번역된 구약성경에서 출발하여 그 대본이 되는 히브리어 본문을 역으로 추적해 나가면서 본문비평의 개념과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왔던 초창기 한글 성경은 원어 성경에서 직역되지 못했고, 한문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 상당부분 의존하여 번역되었다. 기본적으로 원어성경에 기반하여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1938년에 출간된 「셩경 개역」이다. 성서공회 웹페이지에 따르면 셩경 개역은 이후 한글 표현 방식을 개선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표제지 연도 1956)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성경 번역이 사용한 원문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번역과 개정 과정에 사용된 중요한 원문 성경과 역본으로는, 1881년 옥스퍼드에서 간행된 팔머의 「그리스어 신약」(E. Palmer, The Greek Testament with the Readings Adopted by the Revisers of the Authorised Version, 1881)과 1923년판(12판) 네슬레의 「그리스어 신약」(Eberhard Nestle,?Novum Testamentum Graece, 1923)과 긴즈버그의 「히브리어 구약」(Ginsburg, Torah, Nevi’im, Ketuvim: new critical edition,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 1908-1926, Introduction to the Masoretic Critical Edition of Hebrew Bible, 1897)과, 「영어 개역」(English Revised Version, 1881-1885), 「영어 개역관주 성경」(English Revised Version with Reference)과 「미국 표준역」 (The American Standard Version, 1901)과 「흠정역」(King James Version, 1611)과 「한문 대표자역 문리 성경」과 「개역 일본어 신약전서」들이며, 이 밖에도 라틴어 독일어 불어 일본어 등의 번역 성경들이 참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3. 히브리어 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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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스버그 히브리어 본문
긴스버그
즉,개역판 한글 번역본은 1908-1926에 만들어진 긴스버그 히브리어 구약 본문(1판은 1894년에 출간)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긴스버그가 편찬했던 히브리어 구약 본문은 “마소라 편집본”인데(소개), 1525년에 이미 출간되었던 Jacob ben Hayyim ibn Adonijah 가 편집한 랍비 성경 본문(Rabbinical Bible)인 Bomberg Edition(마소라 편집본)에 기초한 마소라 편집본(마소라에 대해서는 후에 논의할 예정)이다. 긴스버그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이었지만, 15세에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다. 그는 Jacob ben Hayyim ibn Adonijah가 편집한 랍비 히브리어 성경에 대해 소개하는 책을 저술하였고, 구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1897년에 히브리성경 마소라 편집본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마소라 편집본이란 특정 히브리어 사본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고 이를 대부분 받아들이되, 필사상의 오류나 문제의 소지가 될만한 부분들을 표시하고 다른 사본들과의 비교를 통해 교정작업을 진행한 성서 본문을 의미한다. 단, 하나의 사본이 아니고, 여러 개의 사본들을 비교하여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편집본(edition)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긴스버그의 히브리어 성경 편집본의 기초가 되었던 16세기에 출간된 랍비 성경 본문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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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성경 본문 (Rabbinical Bible)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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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셰르 가문(Aaron ben Moses ben Asher)의 히브리어 성경 본문
알렙포 코덱스
BHS 편집본에 나타나 있는 마소라 본문
벤 아셰르는(?~960) 가장 정확한 마소라 본문을 작성한 이라고 평가 받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소라 본문이 무엇인지 개략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출판 기술이 발달되기 전, 모든 문서는 손으로 직접 필사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필사 과정 가운데 실수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은 실수 없이 전달되어야 했기에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부가했는데, 그것이 바로 마소라 기호이다. 마소라 기호는 점과 선,그리고 히브리어 문자 등을 통해 본문이 잘못 필사되지 않도록 한 특별한 장치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아마도 당시에는 이러한 마소라 기호를 부가하는 방식이 여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마소라 표기 방식을 전해준 이가 바로 모세 벤 아셰르와 그의 아들 아론 벤 아셰르이다. 모세 벤 아셰르는 카이로 코덱스(예언서; 895)를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의 아들 아론 벤 아셰르는 티베리아에서 만들어졌다가 나중에 시리아의 알렙포 회당에서 발견된 그 유명한 알렙포 코덱스(920)에 모음부호와 마소라 기호를 부가하였다(*자음은 Shlomo ben Buya가 필사).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알렙포 사본은 알렙포에서 발생했던 유대인들의 소요 가운데 오경 부분이 상당부분 소실되었다. 그리고 아셰르 가문이 전수한 마소라 기호 체계가 적용된 또 다른 성경 사본은 레닌그라드사본(1009) (본문)이다. 이 사본의 표제 정보에 따르면, 카이로에서 만들어졌는데 아론 벤 아셰르의 사본을 따라 필사된 것이다. 이 사본은 구약의 모든 성경들이 온전하게 한 책으로 묶여 있는 채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히브리성서 편집본(BHK, BHS, BHQ)의 주 자료가 되었으며, 알렙포 사본의 소실된 부분을 복원하는데 레닌그라드 사본이 중요하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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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소라 사본 이전의 히브리어 성경 사본
그렇다면 그 이전의 히브리어 성경 사본들은 무엇이 있을까? 일단 우리가 갖고 있는 온전한 책(codex)의 형태로 된 더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은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책의 형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책으로 묶여진 형태를 통해 “정경”으로 권위를 갖는 책들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기독교의(가톨릭은 좀 다르지만) 구약 정경 범위는 알렙포 사본과 레닌그라드 코덱스에 근거한다.
물론 마소라 사본 이전의 히브리어 성경 본문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대표적으로 쿰란과 사해 주변에서 발견된 사본들), 책(codex)의 형태가 아니라 두루마리(scroll)의 형태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정경의 범위를 확정할 수 없으며, 또 많은 경우 파편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단지 더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해당 사본의 권위를 마소라 사본보다 우선시 할수는 없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완성되었다고 여겨지는 때가 주전 3-2세기(다니엘서 기준)로 추정되는데, 이 때와 9-11세기 사본들의 연대가 자그마치 1000년에 이른다. 이 시기는 히브리어 성서의 전승 역사에 있어 매우 캄캄한 암흑의 세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간접적으로나마 이 사이를 메꾸어 줄 수 있는 자료들을 갖고 있는데, 바로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70인역 성경이다.
4. 그리스어 성서 (70인역과 다양한 그리스어 번역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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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번역 성경이 70인역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은 바로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내용 때문이다. 이 편지는 기원전 3-2세기 사이에 저작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편지를 위서(Pseudepigrapha)로 분류한다. 본 문서는 알렉산드리아를 통치하고 있었던 프톨레미 2세(Ptolemy II Philadelphus, 281-246 BC 재위)의 신료 아리스테아스가 그리스의 정치인이었던 필로크라테스(Philokratés)에게 보낸 편지글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히브리 율법(성서)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이 글은 헬라어 성서 번역본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작성되었을 것이다).
본 문서에 따르면,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정치인이자 도서관장이었던 Demetrios of Phaleron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히브리 법전을 도서관에 비치해 둘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프톨레미 2세는 막대한 선물을 예루살렘 성전에 보내면서, 히브리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제사장은 각 지파별로 6명의 번역가를 선발하였고, 72명의 번역가들이 72일 동안 성서 번역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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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역 사본들
물론, 위서로 평가되는 위 편지글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70인역은 이르게는 기원전 2세기부터 존재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즉, 히브리어 성서 가운데 마지막으로 작성된 책이라 여겨지는 다니엘서의 저작 연대와 아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시기는 성서 전체의 정경화가 완성된 때는 아니다. 아무튼 70인역과 관계된 코덱스 사본들의 연대가 히브리어 사본들보다 앞서기 때문에 성서 전승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완본으로 남아있는 그리스어 사본들은 아래와 같다.
흥미로운 점은 70인역의 정경 범위와 마소라 본문의 정경 범위가 다르다는 점이다(참고. 정경의 범위 비교). 70인역은 마카비서 등과 같은 외경(*외경이란 히브리어가 아닌 본래부터 그리스어로 된 성서 본문)을 포함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성서 본문 상에서도 상당 부분 마소라 본문과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70인역의 대본이 되었던 히브리어 성서 본문이 마소라 본문과는 달랐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학자들에 따라 70인역의 번역가들이 임의로 본문을 변경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사해 사본의 발견을 통해 각기 다른 형태의 히브리어 사본들이 존재했음이 일부 증명되기도 하였다.
70인역 사본은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보다 그 연대가 수백년이나 앞서 있기 때문에 이 번역본이 원본에 더 가깝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70인역 성경의 결정적인 문제는 그 언어에 있다. 그리스어 사본을 통해 히브리어 원문을 정확히 유추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그 권위를 더 높게 두는 것은 방법론상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70인역은 히브리어 원문을 찾아가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70인역은 유대인들에 의해 번역되기는 했지만, 후에 헬라화된 기독교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유대인들이 외면을 받았다. 동일한 구약/히브리 성경을 공유하면서도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은 각기 다른 성서 본문 전승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개신교 전통에서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을 번역 대본으로 삼고, 또한 정경의 범위를 이와 동일하게 삼고 있지만 성서의 배열과 분류 방식에 있어서 대체로 그리스어 성경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구교 전통에서는 70인역을 통해 전승된 외경 또한 자신들의 성경에 포함시키고 있다.
70인역 외에도 아래와 같이 독자적이거나 혹은 70인역의 영향을 받은 번역본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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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퀼라 (Aquila) (130년경) - 70인역의 결점들을 보완. 문자주의적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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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온 (Theodotion) (2세기) - 원시 테오도시온 존재의 가능성. 논란이 많은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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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쿠스 (Symmachus) (2세기 말 ~ 3세기 초) - 아퀼라보다는 보다 자유롭지만 70인역보다는 문자적인 번역으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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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겐의 헥사플라 (Origen’s Hexapla) (230-245) - 대조역
특히 오리겐의 헥사플라는 히브리어 본문과 당시 존재했던 그리스어 번역 성경을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는데(히브리어 본문 / 그리스어 음역 / 아퀼라 / 심마쿠스 / 70인역 개정? / 테오도시온), 이는 기독교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그리스어역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참고자료).
오리겐의 헥사플라 편집본 (시25:6-7)
그리고 오리겐은 히브리어 성서와 차이가 나는 번역본 부분에 특정하게 표시를 함으로 나름대로 본문비평장치 체계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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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역에는 있지만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없는 구문 표시
÷ εἰς φαῦσιν τῆς γῆς ✓ (땅의 광명, 창세기 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마소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에 광명을 비추기 위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70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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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본문에는 있지만 70인역 본문에는 없는 구문을 다른 번역본에서 가져왔음을 아래와 같이 표시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마소라)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70인역)
그러나 문제는 오리겐이 위와 같은 본문비평장치를 완벽하게 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어 본문들을 비교하고 개정함으로 70인역 본문을 되도록이면 히브리어 본문에 가깝게 만들었다. 즉, 오리겐의 70인역 본문은 70인역 원본이라기 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히브리어 본문의 번역본에 가깝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오리겐의 헥사플라는 총 6500여 페이지에 달했기 때문에 이 책의 완전한 복사본은 한 권도 만들어지지 못했고, 필사자들은 이 가운데 주로 70인역 부분만을 필사했는데, 그나마 오리겐이 표시했던 본문비평장치를 빼먹고 필사했던 까닭에 본래 그가 가지고 있었던 70인역의 형태를 복원하기는 매우 힘들게 되었다.
이 헥사플라는 가이사랴에 비치되어 있었지만, 7세기 무슬림이 이 도시를 함락할 때 소실되었다. 그런데 이 헥사플라의 일부가 복사된 사본들이 발견되었고,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 헥사플라를 복원하는 가운데 있다. 첫 헥사플라 편집본은 Frederick Field (1875)가 출간한 바 있다(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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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되는 그리스어 성서 계보 (아래의 도표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3개의 그리스어 코덱스들(A, B, א)이 헥사플라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글 성경 번역본에서 출발하여 긴 시간의 성서 본문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원본이라고 할만한 것을 찾아 내었는가? 유감스럽게도, 히브리 성서의 원문이라 여겨지는 사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성서 사본들은 틀림없이 우리 앞에 놓인 원문을 복원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들이 된다. 본 글에서는 마소라 전통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70인역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하였지만, 이 외에도 사마리아 오경과 타르굼 아람어 번역 성서 들과 같은 다양한 사본 자료들이 원문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도움이 된다. 이러한 각 사본들을 늘어 놓고 비교하며 원문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바로 본문비평의 절차이다.
다음에는 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성서가 어떤 과정으로 형성 되었는지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