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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 예수님의 기적(3)

갈릴리 동편에 계셨던 예수님은 다시 서편으로 넘어 오셨습니다. 1절의 “본 동네”는 아마도 예수님이 주로 계셨던 가버나움을 일컬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이미 베드로 장모의 열벙을 고쳐주신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병자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중풍병, 즉 몸이 마비되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3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예수님께서는 그 중풍병자에게 죄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병자에게 왜 죄를 말씀하시고 계신 것일까요? 그리고 그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주변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완전한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전통에서 병은 바로 죄 때문에 생긴다고 여겨졌습니다. 특히 무언가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라면 마을에서 쫓아낼 정도로 병자들을 혐오했던 것 같습니다.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 맹인을 가리켜 사람들은 그의 죄 때문에 눈이 멀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들 편의대로 율법을 해석하여 자신들의 종교적인 의로움을 드러내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약 기적적으로 병이 낫는다면 그 병자는 제사장에게 몸을 보인 후에 병이 다 나은 정결한 사람이라는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도 아닌 예수님이 병이 낫지도 않은 사람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시니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4-5절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께서는 묻습니다. 죄 사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쉬운가 아니면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말하는 것이 쉬운가. 사실 두 이야기는 모두 쉽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그래도 비교하자면 죄 사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겉으로 볼 때는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 사함의 문제는 겉으로 금방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확인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를 통해 서기관들의 모순을 꼬집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 증명하지 못할 죄의 문제를 병자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비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과 죄가 관계가 없음을 알려 주셨던 것 같습니다. 병을 고치시기 전에 죄의 용서를 먼저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6-8절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께서는 보다 하기 어려운 말, 즉 “일어나 집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래 병에서 치유함을 받으면 제사장에게 가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자기 자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한 이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