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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장 – 세례요한과 예수님

예수님이 제자들을 각 지역으로 파송하신 후에 감옥에 있던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질문합니다.
3-6절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메시아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 걷지 못하는 사람들, 나병환자 등과 같은 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치유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 졌다는 것을 그 이유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난한 자에 대한 말씀은 특히 이사야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는 메시아가 세상적인 강력한 힘을 갖고 온다기 보다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로하시고, 이들을 세상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오실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당시 처하고 있었던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로마 세력을 몰아내 줄 다윗왕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했던 율법의 기준을 어기고, 오히려 로마인들과도 잘 어울리셨던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인 편견 때문에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모습 때문에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자 예수님은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7-11절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왜 광야로 나갔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 곳은 세상적으로 볼 때 볼품없는 곳이고, 풍요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세상적인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곳은 전혀 아닙니다. 사람들은 결국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기 위해 황량한 광야로 간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은 세상적으로 풍요로운 곳에서 선포되지 않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황량한 곳에 보잘것 없는 행색이었지만 요한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사람이자 예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중들에게 도전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큰 사람이지만 천국에서는 보잘 것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매우 역설적인 말이지만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회중들에게 세례 요한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함을 또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메시아와 그의 길을 예비했던 자 모두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낮고 황량한 곳에서 그리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그 사역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가치임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