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는 마태복음에서 계속해서 열거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예수님의 기적들은 단순히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 사건을 기록한 이후에 나오는 마태복음 저자의 부연설명에서 잘 언급되고 있습니다.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7절에서 인용된 이사야의 말씀은 이사야 53:4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다고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짊어지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와 아픔들을 짊어지시고, 우리의 짐을 덜어주시기 위해 이 땅 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병고침 사역은 단순히 사람들의 물리적인 병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근본적인 삶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근본적인 병, 곧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 가운데 오셨고, 병고침은 이를 표면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18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께 몇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예수님을 따르기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들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학식이 있는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라온다면 적당한 거처 하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기관의 위치 정도면 어느 정도 존경받고 안정된 삶을 사는 자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엄청난 능력과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것임을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의 한 제자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장례를 치루고 오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은 보통 사람이 죽으면 7일간의 애도 기간을 가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도리를 하는 것이 분명히 중요한 일이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마저도 포기할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제자 이야기와 다음에 나오는 두 기적 이야기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십니다. 호수 건너편은 예수님 당시 이방인들의 도시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 부근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 가운데 엄청난 바람이 불어 배가 침몰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평생을 갈릴리 호수에 살았던 제자들 마저도 겁이나서 예수님께 달려가 살려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시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25절에서 제자들은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예수님께 소리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전 이야기에서 아버지의 장례에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한 제자,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죽음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습니다. 즉, 어느 곳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 곁이었습니다.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갔습니다. 가다라(혹은 거라사) 지방은 이방인들의 마을입니다. 그 곳에서 엄청난 귀신들에 씌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 곳에 남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믿고 있었던 종교적 진리, 그리고 삶의 진실이 깨어지기를 원지 않았던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자신들이 믿고 있었던 신들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고, 그들의 선택은 눈앞의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려고 했던 서기관에게 말씀하신대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채 바꿔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마태복음 8장은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