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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 세례

마태복음 3장은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삭막한 유대광야에서 회개할 것은 선포했습니다.
1-3절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세례 요한이 회개를 선포했던 곳은 유대 지방의 “광야”(wilderness)였습니다. 광야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곳입니다. 즉,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땅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 광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한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를 통해 그 곳에서 탈출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3장은 아래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보호해 주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3:21-22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러한 면에서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던 그 광야로 돌아와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례 요한 시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고, 거대한 성전도 예루살렘에 존재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의 성경 구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5-10절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어 줍니다. 여기서 세례는 유대교 전통에서 몸을 물로 씻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함을 입는다는 정결례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기적같이 흐르는 물로 사람들을 깨끗게 한다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관계된 중요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이 세례를 베푸는 곳으로 왔을 때 세례 요한이 이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비난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 성경을 해석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엘리트 계급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많이 읽고, 또 제사에 열심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세례 요한은 비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조상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도리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러한 세례 요한의 비난 가운데 전달되는 중요한 핵심은 바로 구원에 관한 문제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특히 엘리트 계층은 성경의 율법만 잘 지키고, 제사를 잘 드리고, 무엇보다도 혈연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구원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와 여기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여다 보면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 즉 “사랑의 실천”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찾아 오셔서 세례를 받게 되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세례 주기를 거부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동일하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잘못된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심판하러 오심이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위치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 싶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통해 그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계십니다.
16-17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