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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강 성서의 형성 과정

성서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1. 성서(the Bible)의 의미

성서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Bible은 그리스어 단어 βιβλία(βιβλίον의 복수형)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아마도 오늘날 레바논의 북서쪽에 있는 항구 도시 비블로스(βύβλος)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비블로스는 이집트의 파피루스(papyrus)를 수입하여 그리스로 재수출했던 중개무역항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래서 이 도시이름 자체가 파피루스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βιβλία는 βιβλίον의 복수형으로 "책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성서는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다양한 책들의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성서는 다양한 시대와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들과 법, 그리고 시와 노래, 예언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일종의 도서관(the library)이라 할 수 있다.

2. 성서 기록과정

그러면 성서는 어떠한 과정을 통해,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 기록되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대의 기록 방식에 대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구전과 기억
그러나 그 후에 내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을 새로운 계약은 이렇다. : 내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새기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 31:33)
최초의 기록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글자와 종이가 아닌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위 예레미야의 구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기록하실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마음에 기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바로 “기억"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문서 기록으로 남아있다 할지라도,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 즉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은 당시 대중들이 이야기나 가르침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대부분의 대중들은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내용의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교육은 주로 구전과 기억을 통해 이루어졌다. 지금도 문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상당히 긴 분량의 역사를 구전으로 전수해 주고 있다(이 경우 노래 혹은 시가 훌륭한 기억의 수단이 된다).
구전과 기억을 중심으로 한 정보 전달의 특징은 전승 과정 가운데 그 내용이 일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틀의 핵심적인 내용은 기억하기가 용이하지만, 고유 명사나 단어 사용의 정확성은 다소 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한 예를 아래의 잠언서의 말씀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위 두 구절은 사실상 그 의미가 동일하다. 그런데 원문을 보면 세세한 표현 방식에 있어 동사나 접미어의 사용방식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비평적인 관점에서 이를 다른 문서층, 혹은 필사상의 문제로 상정할 수도 있지만, 구전과 기억을 중심으로 한 전승과정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성서를 비롯한 고대 문서에서 이러한 다양성은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세의 장인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드로인가? 호밥인가? 아니면 르우엘인가? 이러한 다양성을 구전과 기억의 특성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구전과 기억을 통해 형성된 이야기들과 전승들은 문서화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표준 문서 개념의 등장
진정한 의미의 기록(writing)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표준 문서의 등장 단계부터라고 볼 수 있다. 고대 사회에 다양하게 전승되었던 많은 구전 이야기들 가운데 특정한 이야기들이 나름대로 중요한 가치와 권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그 권위를 인정받은 이야기들은 무분별한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고정화될 필요가 생기는데, 이러한 고정화가 바로 문서 기록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표준문서화되는 이야기들은 주로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야기들이다(창조 이야기, 영웅 신화 등등).
당시, 읽고 쓰는 능력은 사회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표준문서화는 엘리트 서기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록보다는 “기억"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문서는 완전한 기록을 위한 자료가 되는 것이며, 여전히 대부분의 교육과 이야기 전승은 구전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표준 문서화 이전 단계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정보전달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이러한 표준 문서들은 결국 구전과 기억을 통해 전승된 자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마다 상이한 버전의 문서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길가메시 서사시의 경우 다양한 판본들이 존재했던 증거가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성서 본문들이 때로 다른 판본을 전제하는 듯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바로 문서화되기 이전에 상당부분 구전과 기억을 통해 전승되는 자료들이 각 지역마다
표음 문자 혁명
인류의 문자체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는데 표의문자 체계와 표음문자 체계이다. 표의문자는 한자어와 같이 문자마다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체계를 의미한다. 이 경우 한정된 의미가 각기 다른 문자 기호들로 일일이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문자를 고안해내어야 했으며, 이런 문자체계를 터득하는 것 또한 쉬운일이 아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이러한 표의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던 곳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오른쪽 그림처럼 처음에는 그림에 가까운 방식에서 보다 기록하기에 용이한 추상화된 기호로(쐐기문자) 발전되어갔지만, 상당히 많은 글자들을 외우고 쓰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회의 평민들은 간단한 문자를 읽고 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참고).
한편, 표의문자체제와 상반되는 문자 표기 방식이 특별히 가나안 지역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표음문자이다. 표음문자는 영어와 한글과 같이 소리를 표시하는 한정된 수의 자음과 모음을 가지고 글자를 표기하는 방식이다.
가나안 지역에서 생겨난 이 표음문자는 페니키아어, 아람어, 히브리어 등의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사용되었고, 당시 중개 무역을 하던 페니키아인들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기도 했다.
표음문자의 특징은 앞서 언급했듯이 한정된 글자, 가나안어 계통의 언어의 경우 22-23글자 정도만 익히면 대중들이 읽고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문헌은 읽을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문자 표기의 용이성으로 인해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메소포타미아 제국들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시대에도 아카드어가 아 닌 아람어가 국제 공용어(lingua franca)로 사용되었던 것은 표음 문자의 용이성 때문이었다.
알파벳의 발전
메소포타미아의 표음문자 표기 체계의 발전(수메르어, 아카드어)
쐐기문자 (단어의 예)
이런 측면에서 표음문자로 표기된 히브리어는 훗날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을 타고난 문자였다고 할 수 있다. 아래 텔아라드에서 발견된 간단한 기록들의 증거는 간단하게 읽고 쓸 수 있던 이들이 생각보다는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아라드에서 발견된 기록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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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판과 경문
중요한 글은 돌판, 혹은 경문 등의 형태와 같이 단편적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러한 기록은 왕정 선전물, 달력, 경구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게젤 달력 (기원전 10세기경)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역대하 5:10)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8-9)
위와 같은 성서 구절이 가리키는 기록의 의미는 무엇인가? 위에서 언급된 두 돌판과 손목과 미간, 그리고 문설주에 붙여야 할 기록은 적어도 읽기를 위한 목적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기록들은 상징과 전시의 의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위의 기록 매체가 담고 있는 내용은 잘 알려진 보편적인 내용인 경우가 많으며, 이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내용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상징적인 형태로서의 기록은 아래의 케테프 힌놈의 무덤에서 발견된 기록의 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이러한 단편적이고 상징적인 기록물들은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에게 내용을 상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여전히 기록과 기억이 공존하는 단계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단계는 포로기 이전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러한 기록의 방향은 유다의 멸망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토판, 그리고 두루마리
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고대 시대에 장문의 기록을 담았던 기록 매체는 바로 토판과 두루마리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는 글자의 특성상 주로 토판에 새겨졌다. 쐐기 문자는 날카로운 필기구로 진흙 토판에 찍는 식으로 작성을 했고, 이후에는 건조시키거나 불로 구워서 내구성을 강화 시켜서 보존하였다. 토판은 내구성이 탁월하고 건조한 중동 지역의 기후 덕이 오랫 동안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역사와 종교, 그리고 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반면 히브리어와 같은 글자들은 토판에 작성하기가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먹을 매긴 펜으로 파피루스나 양피지 두루마리에 글자를 작성했다. 그런데 이러한 두루마리들은 토판과 달리 내구성이 약한 단점이 있었고, 특히 습기에 약했다. 그래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히브리어 두루마리 기록들은 중세 사본들 내지 건조한 동굴 깊숙히 숨겨져 있었던 사해 사본들이다.
양피지와 파피루스 제작과정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열왕기하 22:8)
위와 같이 구약 성서에서 "책"이라는 언급이 종종 나타나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 표현은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책의 형태가 아니라 바로 두루마리(scroll)를 일컫는 것이다.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경문들이나 가르침들이 특정한 계기를 통해 하나의 두루마리로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가지고 편집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들만으로는 구약성서의 두루마리들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위와 같은 성서의 기록을 통해 일부 성서의 책들(*학자들은 위 율법책을 신명기서일 것이라 추정함)이 두루마리로 작성되었다고 짐작할 뿐이다.
쿰란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두루마리
그런데 본격적으로 토라 율법 두루마리가 형성되고 확정된 시기는 포로기 이후로 추정된다.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기원전 587년 멸망하게 된다. 이 때 예루살렘 성전 역시 파괴되는데, 성전의 파괴로 제사 중심적인 종교에서 말씀 중심 종교로 그 종교적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토라 율법이 어느 정도 형성된 시기가 이 때로 추정되며,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다른 예언서들과 성문서의 책들 역시 두루마리 형태의 기록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즉, 체계적으로 성서의 표준문서화가 진행되었으며, 그 다음의 단계는 정경화의 단계이다.
정경화(Canonization), 그리고 코덱스(Codex)
정경화는 신앙 공동체 내에서 권위있는 내용의 책들의 공식적인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즉 당시 존재하는 여러 표준문서들 가운데 다시 문서들을 선별하여 모으는 일이다. 구약 성서의 마지막 책이 다니엘서인데, 이 책은 기원전 3-2세기 경,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전통적으로 히브리성서의 정경은 삼분화된 구조(토라 - 율법서, 느비임 - 예언서, 크투빔 - 성문서)로 전승되었는데, 아래의 복음서 구절은 이러한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ἐν τῷ νόμῳ Μωϋσέως καὶ προφήταις καὶ ψαλμοῖς)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누가복음 24:44)
그러나 위 복음서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정경의 형태와 동일한 형태의 성서를 나타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성문서라는 표현 대신에 시편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시가서 일부만이 정경의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기원 후 1세기 말경 유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Contro Apoine I, VIII, 37-41에서 다음과 같이 모세에 책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모든 이가 역사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문서들〔성경〕에는 모순되는 점들이 없다. 그러나 예언자들만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아주 오래된 옛 사실들을 이해하고 그들 시대에 있었던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기록하였다. 물론 우리에게는 서로 모순되는 수천 가지 다양한 책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 그럴 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스물두권의 책만이 있으며, 이들은 모든 시대의 역 사를 담고 있다. 이들 가운데 다섯 권은 모세의 책들로 법조문들과 인간 창조로부터 모세 자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승을 담고 있다. 이 기간은 거의 삼천년을 포괄한다. 모세의 죽음으로부터 크세르크세스를 계 승한 페르시아의 임금 아르타크세르크세스에 이르기까지 모세의 뒤를 이은 예언자들은 자기네 시대의 사건들을 열세 권에 나누어 기록하였다. 나머지 네 권은 주님께 대한 찬가와 사람들에게 주는 인생 조언들을 포함하고 있다. 크세르크세스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이 서술되었다. 그러나 이 책들에 대해서는 이전의 책들만큼 신뢰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예언자들의 승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히브리성서 분류법 - The 24 Books of the Hebrew Bible • Torah.org)
*참고. 요세푸스가 언급했음직한 정경의 범위 (Duane L. Christensen, “Josephus and the Twenty-Two-Book Canon of Sacred Scripture”, JETS 29/1(March, 1986), pp.37-46
정경화의 결과를 보여주는 기록 형태가 바로 코덱스(codex)이다. 코덱스는 제본한 형태의 문서, 즉 현대적인 책의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코덱스는 주후 2세기가 되어서야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코덱스의 특징은 낱권으로 보관되는 방식인 두루마리와 달리, 여러 책들이 정경의 형태로 한권에 묶여진 증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기록 매체의 발전
쿰란 문서에서 발견된 성서 사본들은 여러 전통의 성서들이 공존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단일한 표준문서화가 완료되지 못하고 여전히 다양한 전통의 문서들이 공존했는데,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의한 2차 성전의 파괴, 그리고 기원후 135년 제2차 유다 항쟁 이후, 원시 마소라 본문(proto-masora)이 단일한 표준문서로 채택되어 전승된 것으로 생각된다. 원시 마소라 본문과 공존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전통의 본문들은 70인역과 사마리아 오경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이후, 성서는 마소라 부호의 확립과 인쇄술의 발명 등으로 점점 더 안정적인 내용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구전 단계 - 왕정 수립 이전 (기원전 10세기 이전)
구전 / 문서 단계 - 왕정 수립 이후, 포로기 이전 (기원전 10세기 ~ 6세기)
문서 단계 - 포로기 이후, 에스라 (기원전 6세기 ~ 3세기)
정경화 단계 (기원전 3세기 이후 ~ 4세기?)
마소라 체계의 확립과 전승 (7세기 ~ 11세기)
중세 사본들의 생산 (11세기 ~ 1440)
인쇄술의 발전으로 인한 대량 생산 (1440 ~ 현재)